에코로 AI 읽기: 움베르토 에코의 기호학으로 읽는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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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로 읽는 인공지능의 기억법
『메멘토』의 레너드 셀비는 기억하기 위해 몸에 문신을 새긴다. 하지만 피부 면적은 유한하다. AI도 마찬가지. 한 번에 입력할 수 있는 토큰(기억)의 양은 정해져 있다. 몸에 빈 공간이 없으면?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레너드가 단편적 단서들만으로 구성한 사건의 인과는 엉망진창이다. 마찬가지로, AI 모델이 만들어내는 말들도 뒤죽박죽 앞뒤가 바뀔 수 있다.
AI 환각의 원인:H-뉴런은 죄가 없다.
AI의 학습 과정 역시 이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AI는 수많은 텍스트 데이터를 통해 단어(Token)와 그 단어가 가진 함의(Vector) 사이의 관계를 학습한다. 인간이 경험과 사회화를 통해 기표에 기의를 달라붙게 만들듯, AI는 파라미터(매개변수)의 조정을 통해 기표와 기의의 연결 고리를 단단하게 만든다. 즉, 구조적인 측면에서 AI는 인간의 기호 작용(Semiosis)을 완벽하게 시뮬레이션하고 있는 것이다.
AI 시대, 왜 다시 인문학인가?
우리는 AI가 내리는 어떤 판단에 대해서도 두 가지 측면에서의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그 판단이 편견이나 차별 같은 '잘못된 허구'를 토대로 한 것은 아닌지. 둘째, 반대로 그 판단이 정의나 인권처럼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합의로서의 허구(상상의 질서)'를 훼손하지는 않는지.
문학동네가 묻고 움베르토 에코가 답하다.
AI 시대의 문학, 그리고 인간의 지성은 위기에 처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의미를 구성하는 작업은 개인의 몫이자 생동하는 과정"임을 다시금 확인 받고 있는 것이다. 기계가 텍스트를 쏟아낼수록, 그 안에서 인과관계를 엮고 강약을 부여하여 '진짜 이야기'를 만드는 인간의 권능은 더욱 빛난다.
[르쿤 vs 하사비스]AI 신들의 전쟁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하사비스와 메타의 얀 르쿤이 붙었다. 하사비스는 "르쿤이 '일반 지능'과 '보편 지능'을 헷갈리고 있다"며, 인간의 뇌는 시간과 데이터만 있으면 무엇이든 배우는 '근사 튜링 기계'이므로 AI도 곧 그 수준(AGI)에 도달할 것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의 눈으로 보면, 하사비스의 이 화려한 수사는 '기호학 엔진(Semiotic Engin-e)'의 한계를 감추려는 교묘한 방어 논리다.
아는 척하는 문명, 모른다고 못하는 AI
제대로 배우지 못한 내용을 만났을 때, AI는 '침묵' 대신 '그럴듯한 추측'을 선택하도록 훈련받았다.
이것은 카스파르 신부의 태도와 놀랍도록 닮아 있지 않은가? 모르는 물고기 앞에서 침묵하느니, 엉터리 이름이라도 붙여서 권위를 지키려 했던 그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다.
환각을 부수는 두 개의 닻: 리아와 마이아
AI 시대는 우리를 다시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세운다.
기계는 카소봉과 콜론나처럼 끊임없이 그럴듯한 텍스트의 미궁을 쌓아 올릴 것이다. 그 안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우리에게는 두 명의 가이드가 필요하다.
리아의 눈으로 텍스트의 검증하고, 마이아의 감각으로 현실과 연결하는 것.
고스트 라이터의 페르소나
시메이 주필의 특별한 요구는, 프롬프트가 AI의 페르소나 벡터를 활성화하는 방식과 정확히 겹친다. 콜론나처럼, AI도 정해진 결론을 향해 언어를 배열한다. 이때 벡터는 사실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뒤틀고, 그 관점은 다시 해석의 경로를 고정한다.
인공지능은 얌보다
AI는 얌보처럼 거대한 '의미론적 기억'의 집합체다. AI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인용해 사랑을 논할 수 있고, 의학 논문을 요약해 고통을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AI는 한 번도 사랑 때문에 밤을 지새워 본 적이 없으며, 주사 바늘의 따끔함을 느껴본 적이 없다.
호날두와 장미십자회의 비밀
AI에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C.R.)와 장미십자회(R.C.)의 이니셜 유사성을 던져주며 물었다. "이 둘 사이에 숨겨진 성전 기사단의 비밀 계획이 있을까?"
AI는 망설이지 않았다. 호날두의 등번호 7을 생제르맹 백작과 엮고, 레알 마드리드 엠블럼에서 십자가를 찾아내며 순식간에 완벽한 음모론을 직조해 냈다.
AI에 없는 것: 텍스트를 넘어선 세계의 경험
AI가 언어를 아무리 잘 다룬다 해도 세계의 잔향은 텍스트만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 잔향을 느끼는 존재는 여전히 인간이다. 윌리엄의 논리, 호르헤의 텍스, 아드소의 경험. 이 세 조각이 함께 있을 때만 세계와 텍스트의 관계가 온전히 드러난다. AI는 그중 하나의 조각만 가고 있다. 나머지는 여전히 우리의 몫이다.